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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감천재 웨스 앤더슨의 레전드 성장영화 문라이즈 킹덤 집중탐구: 시작과 끝, 그리고 비하인드

당신이 모르는 감독의 마음 2021. 10. 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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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같이 정교하고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진 배경과 소품, 대칭적인 구도와 반복적인 카메라의 움직임, 등장인물들의 매끄러운 동선과 동작 등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들은 모든 시각적 요소가 섬세하고 치밀하게 연출되어 있기로 유명합니다. 압도적으로 독특한 미장센으로 인해 고유한 장르를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죠.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주로 미숙한 어른과 성숙한 아이들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에게 무서울 만큼 직설적이지만 대화는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게 흘러가죠. 오늘은 그의 작품 중 사춘기 아이들의 복잡한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는 문라이즈 킹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그의 작품들이 배경과 소품의 섬세한 활용으로 유명한 만큼, 문라이즈 킹덤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배경과 소품들이 주인공들의 성장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블로그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65년 작은 섬마을들을 배경으로 한 문라이즈 킹덤은 아웃사이더인 12살 아이들의 도피로부터 시작됩니다. 부모를 잃어 위탁가정에 맡겨진 샘은 어느 날 단체로 성당에 연극을 보러 갔다가 까마귀 분장을 한 반항아 수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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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1년간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다시 만난 둘은 아무도 모르게 자연 속으로 모험을 떠납니다. 실종된 두 아이에 대한 수색이 벌어지는 와중에, 이 지역을 삼일 안에 강타할 큰 폭풍이 예고되기도 하죠. 도피 과정에서 수지와 샘은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기도 하고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문라이즈 킹덤의 시작과 끝 장면은 수지의 집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과 진행이 흡사하고 비슷한 요소도 많죠. 수지의 남동생들은 여전히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을 듣고 있고, 수지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웨스 앤더슨이 애호하는 촬영 기법인 긴 돌리 샷과 패닝 샷으로 집을 보여주는 것도 똑같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처음과 달라진 점이 많이 있습니다.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영화 오프닝과 엔딩 속 똑같은 구도와 인물 배치.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1. 환경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요소는 달라진 날씨입니다. 처음에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씨 때문에 감정적으로 침체된 느낌이 들었죠.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날씨는 화창합니다.

영화의 오프닝.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영화의 말미.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 보면, 수지와 샘이 처음 만난 날 공연되고 있던 연극은 노아의 방주였습니다. 즉 강력한 태풍 끝에 맑게 갠 날씨는 이 둘에게 삶의 새로운 장이 펼쳐졌다는 것을 의미하죠.

수지가 참여하고 샘이 관객이었던 노아의 방주 연극.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사상 최대의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는 클라이막스.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2. 색상

눈여겨볼 만한 또 다른 요소는 수지의 옷입니다. 회상 장면을 제외하면 수지의 의상은 늘 붉은 계통이었습니다.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수지가 입고 있는 옷은 밝고 따뜻한 노란색이에요.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이 장면 직전에 영화의 내레이터는 노란 옥수수밭을 배경으로 노란 옥수수를 손에 들고 폭풍우 이후로 수확량이 이전 기록들을 웃돌았다고 말합니다. 이어 수지의 집을 배경으로 작물의 품질 또한 훌륭했다고 말하죠. 아이들의 성장을 옥수수에 빗대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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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품  - 책

다음으로 주목할 점은 수지가 읽고 있는 책입니다. 수지가 영화에서 읽는 모든 책은 웨스 앤더슨이 이 영화의 내용에 맞게 직접 만들어낸 가상의 책들이에요.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첫 장면에서 수지가 읽고 있는 책은 가족의 구박덩어리인 11살 체조 선수 쉘리와 마법의 목걸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모님을 경멸하며 항상 쌍안경을 목에 걸고 다니는 수지를 연상시키는 주인공이죠.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수지가 읽고 있는 책은 과학을 배우게 된 주인공이 마녀 사냥꾼인 할머니를 두고서도 자신은 마법을 믿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초자연적인 설명보다 논리적인 설명을 더 흥미롭게 여기죠. 수지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은 수지의 성장과 내면의 변화를 짐작하게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Nc7HuatHQ 

문라이즈 킹덤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 올린 이 영상은 극 중 수지가 읽는 다양한 가상의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 소품  - 그림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시각적인 요소들 중 가장 큰 여운을 남기는 것은 샘이 그리고 있던 그림입니다. 샘과 수지가 야영을 했던 마일 3.25 조류 통로. 마일 3.25 조류 통로에서 수지와 샘은 이곳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기로 합니다. 그림을 보시면 해변에 문라이즈 킹덤이라고 쓰여 있지만 극 중 수지와 샘은 문라이즈 킹덤이라고 이름을 짓고 해변에 글씨를 만들만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샘이 그리고 있던 그림.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애틋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이곳은 안타깝게도 폭풍우로 인해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되돌아갈 수 없게 된 마일 3.25 조류 통로는 하지만 샘의 그림 속에서나마 문라이즈 킹덤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되었네요. 이 그림을 통해 수지와 샘의 모험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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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우울한 여운을 남기는 웨스 앤더슨의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문라이즈 킹덤은 상당히 낙천적인 영화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짝사랑에서 영감을 받아 문라이즈 킹덤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그의 어린 시절과 달리 이 영화는 두 아이들에게 행복한 결말을 선사했네요. 문라이즈 킹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영상에 담겨 있습니다. 즐겁게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Vi4vTvJlEk